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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9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완벽하게 준비하려다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밀

어느 날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교사 언니도 있고, 특성화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교단에 섰지만, 정작 퇴근 무렵 그들을 짓누르는 것은 아이들과의 수업이 아닌 감당하기 힘든 행정 서류와 글쓰기라는 고백이었습니다. 특히 학기 말이 다가오면 수십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와 행동특성,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작성하느라 밤늦도록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습니다. 매뉴얼에 맞는 단어를 고르고, 조건에 맞는 문장으로 정제하느라 정작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어줄 여유조차 빼앗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발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무언가 대단한 시스템을 만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겪는 '매일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진짜 아픔이 머무는 자리를 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단순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써야 할 서류 문장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학기 말의 벼락치기 작성은 관찰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남겨둔 수많은 메모와 관찰 기록을 나이스(NEIS)라는 행정 시스템 규격에 맞춰 정갈한 문장으로 변환해 내는 그 고단한 변환 과정에 있었습니다. 평소에 아이가 칭찬받을 행동을 했을 때, 혹은 따끔한 지도가 필요했던 순간을 한 줄씩만 적어두어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초안 문장으로 엮어줄 수만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선생님들은 학기 말의 두통과 야근 대신, 학기 중에 아이들을 더 따뜻하고 자세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전공자이지만 다행히 요즘은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코드로 옮겨 담을 수...

진짜 부자라면 혼자 조용히 벌 텐데, 왜 굳이 비법을 공개할까?

스마트폰을 켜면 알고리즘이 눈앞에 기가 막힌 영상들을 쏟아냅니다. "하루 82만 원? 애드센스 고수들이 몰래 쓰는 비밀 방법", "블로그 부업으로 순수익 27억 번 92년생의 비결", "자고 일어나도 통장에 달러가 꽂히는 자동 수익".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제 그 영상들을 멍하니 보며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누워서 돈을 긁어모은다고 말합니다. "어라? 나도 저걸 따라 하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거 아닌가? 참 쉬워 보이는데..." 하는 유혹이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남들은 저렇게 영리하게 앞서가는데 나만 바보처럼 미련하게 살고 있나 싶어 울컥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진짜 부자라면 왜 굳이 남에게 알려줄까?" 하지만 서너 개의 영상을 연달아 보던 중, 지워지지 않는 상식적인 의문 하나가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잠깐만... 진짜 저렇게 쉽게 떼돈을 버는 꿀통이 있다면, 왜 굳이 남한테 가르쳐주는 거지? 조용히 혼자 벌면 될 텐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안방 장롱 깊숙이 숨겨두고 혼자 알을 꺼내 먹는 것이 상식입니다. 경쟁자가 생기면 내 밥그릇이 줄어들 텐데, 왜 굳이 얼굴을 공개하고, 유튜브 채널을 파고, 밤마다 목이 쉬어라 무료 라이브 방송을 켜서 비법을 떠먹여 주겠다는 걸까요? 처음에는 사람을 너무 순진하게 보려 했습니다. '돈은 이미 평생 쓸 만큼 다 벌었으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명예를 원하나 보다. 책도 내서 작가 소리도 듣고, 막막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겠지.' 하고 좋게 해석해 주려 했습니다. 어쩌면 현실에 지친 내 마음이, 어디선가 마법처럼 나타나 나를 이끌어줄 '마음씨 좋은 은인'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19세기 골드러시와 곡괭이 장사꾼 하지만 영상 아래 더보...

당신이 게으른 게 아니다: 3초를 미루면 벌어지는 일

살면서 내 손으로 쓰레기 트럭을 채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군생활을 산업기능요원으로 지방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아파트 한 채를 빌려 또래 한국인 동료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함께 생활하던 곳이었습니다. 매일 고된 노동과 밤늦은 야근이 이어졌습니다.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길이면 늘 편의점에 들러 빵이나 과자, 컵라면 같은 간단한 먹거리를 사 들고 와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 먹고 난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넣거나 싱크대에 가져다 두는 사소한 일조차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내일 치워야지", "주말에 몰아서 정리해야지" 하며 방구석에 밀어두기 시작했습니다. 그 '나중에'가 쌓이자 벌어진 일은 참혹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집안 구석구석에 빈 봉지와 캔이 나뒹굴었고, 악취가 풍기기 시작하더니 바퀴벌레까지 나타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집은 삽시간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 '쓰레기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너희들, 왜 집이 이 지경이 됐는지 아나?" 어느 날 예고 없이 기숙사를 방문하신 회사 부장님이 그 광경을 목격하셨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기겁하신 부장님은 기숙사 인원 전원을 집합시켜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었고, 방치했다가는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우리는 하루 종일 트럭에 쓰레기를 몇 번이나 실어 나르며 대청소를 했습니다. 묵혀두었던 이불과 수건, 빨랫감까지 전부 꺼내 빨며 온몸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청소가 대강 마무리되었을 때, 땀을 닦던 부장님이 우리를 둘러보며 물으셨습니다. "왜 집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다들 생각해 봐라.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혼이 난 동료들이 저마다 변명 섞인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

생일날 아침 서운해하던 장인어른, 그리고 유독 그리운 장모님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모여 장인어른의 생신 식사를 대접해 드렸습니다. 사위와 딸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고, 오랜만에 모여 웃으며 식사를 마쳤기에 다들 기분 좋게 한 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신 당일 낮 11시경, 아내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화면을 확인하고 반갑게 전화를 받은 아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장인어른의 목소리에는 서운함과 역정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오늘이 아빠 진짜 생일인데, 어떻게 아침에 축하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이 없냐? 너무한 거 아니냐!" 생일날 걸려온 서운함의 독촉 전화 아내는 멍하니 전화를 받다가 이내 울컥하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낮에는 서로 일하느라 바쁘니 퇴근하고 저녁에 차분히 안부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주말에 모여 선물과 함께 식사 대접까지 다 해드렸는데, 당일 낮에 연락이 없었다고 빚 독촉하듯 닦달을 하시니 순간 야속함이 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아내는 속상함에 씩씩거리며 끝내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저도 같이 맞장구를 치며 서운함을 토로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은 화를 내는 아내의 곁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등을 쓸어내려 주었습니다. "생신이라 집이 더 적적하셨나 보네. 당신 바쁜 거 아시면서도 그냥 자식 목소리가 듣고 싶으셨겠지. 너무 속상해하지 마." 아내를 다독이면서도 제 마음 한구석 역시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가 왜 이토록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지, 그 눈물 뒤에 깔린 빈자리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온기였던 어머니의 빈자리 장인어른은 젊은 시절 거친 풍파를 겪으며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하지만 그 거친 세월 속에서 가족들 사이의 모난 구석을 보듬고, 자식들과 남편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주던 중심은 언제나 온화하셨던 장모님이었습니다. 몇 해 전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 집안의 ...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가 유독 남일 같지 않게 재미있는 이유

요즘 디즈니+에서 하는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를 4화까지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습니다. 1970년대 격동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수싸움과 권력 암투가 어찌나 팽팽한지, 한 회 한 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됩니다. 시즌 1 때는 법과 원칙을 지키려는 장건영 검사를 응원하며 봤는데, 시즌 2로 넘어오면서 인물들의 관계가 꼬이고 상황이 뒤집히는 판세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징역살이를 겪고 나와 거대한 권력에 붙어버린 장검사나, 중앙정보부의 힘이 빠져 벼랑 끝에 몰린 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백기태나, 보고 있으면 참 묘한 몰입감이 듭니다. 선과 악이 아니라, 다들 살겠다고 치받는 판 이 드라마가 유독 흥미로운 건, 뻔한 권선징악이나 착한 놈 나쁜 놈의 이분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그냥 전부 다 '제 밥그릇과 자리, 그리고 제 가족을 지키겠다고 피투성이가 되어 치받는 인간들'입니다. 어떻게든 권력의 실세인 황대식을 먼저 쳐내고 살아남아야 하는 백기태와 천실장의 숨 막히는 작전을 보면서, 불현듯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저 시대극 속 거창한 권력 싸움이, 사실 지금 우리가 매일 치러내고 있는 현실의 생존 게임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 사는 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위치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내 사람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온갖 수를 쓰고 땀을 흘리며 부딪히는 것이지요. 저 치열함이 남일 같지 않은 이유 드라마 속 인물들의 그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서 문득 제 상황을 겹쳐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적지 않은 나이에 안락했던 이전 직장을 정리하고 나와, 다음 커리어를 위해 새로운 자격을 준비하고 단기 현장 일부터 뛰며 새로운 판을 짜고 있는 중이니까요. 남들이 보면 사서 고생한다고 할지 몰라도, 가만히 주저앉아 미래를 갉아먹는 것보다 내 발로 딛고 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보겠다는 일종의 승부수입니다...

40대 가장이 대책 없이 퇴사하고 맞이한 아침, 나는 정말 무책임했을까

지난달 초, 7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4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 일을 50대까지, 정년까지 계속할 자신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확실하게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만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내와 아이가 있고, 당장 들어오던 고정적인 수입도 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밤이 되면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 '내가 너무 무책임했던 걸까?' 그것은 정말 '무책임'이었을까 퇴사를 결정할 때는 지금처럼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일을 계속 붙들고 있다가는 언젠가 정말 버티기 힘들어질 것 같다는 직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만두기 전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는 했습니다. 혹시 몰라 정부 지원 교육을 통해 지게차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퇴사한 뒤에는 곧바로 단기 물류·창고 일을 구했습니다. 박스를 나르고 지게차를 몰며 하루하루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일도 내일이면 끝이 납니다. 막상 일이 끝나는 날이 다가오니 마음이 묘해집니다. 내일까지만 출근하면, 모레 아침에는 오랜만에 출근하지 않는 낯선 아침을 맞게 됩니다. 평소라면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을 시간에 나는 집에 멍하니 앉아 있겠지요.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 기간도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어갑니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자꾸만 '무책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했습니다. 만약 내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것을 내던진 무책임한 사람이었다면, 퇴사 전에 지게차 자격증을 따고 퇴사 직후 물류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었을까요. 물론 이것만으로 대단히 책임감 있는 선택을 했다고 자화자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내가 삶을 함부로 내팽...

다들 일 못한다고 무시하던 신입이, 단 한 주 자리를 비우자 벌어진 일

직전 직장에서 1년 넘게 함께 일했던 신입사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첫인상부터 굼뜨고 어수선하더니 실제로 업무에 들어가자마자 온갖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일의 속도가 남들보다 서너 배는 느렸고, 선임들이 몇 번이고 가르쳐주어도 도무지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알려준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작업을 하다가 대형 불량을 내거나, 수습하기 힘든 사고를 연달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팀원들의 시선은 빠르게 차가워졌습니다. "저 친구는 수습 끝나면 어떻게 내보내야 하냐", "기본적인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 같다"며 대놓고 혀를 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 내에서는 거의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하자 있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 친구를 마음 놓고 비웃거나 험담에 쉽게 말을 보탤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 직장에서 겪었던 아주 부끄러운 기억 하나가 가슴 한구석에 생생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저도 느린 사람을 비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다니던 직장에도 유난히 손이 느리고 답답하던 동료가 한 명 있었습니다. 혈기 왕성하던 저는 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그를 답답하다고 수군거렸고, 은근히 무시하는 자리에 슬쩍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작업 도중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앞이 캄캄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평소에 제가 가장 답답하다고 손가락질했던 바로 그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묵묵하게 제 사고를 완벽히 수습해 주었습니다.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은 채 말입니다. 그날 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깊은 수치심과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사람의 깊이와 진가를 얼마나 오만하게 재단하고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배웠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새로 들어온 그 느림보 신입사원을 보면서도, 저는 남들처럼 ...

주목받기는 싫지만 소외되는 건 견디기 힘든 내향인의 마음

저는 MBTI를 검사하면 늘 극단적인 'I'가 나오는 사람입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건 질색이고, 어디서 주목이라도 받으면 손발이 먼저 오그라듭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은근히 소외되는 느낌을 받으면 속에서 스멀스멀 기분이 나빠지곤 했습니다. 분명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데, 대화는 제 양옆과 맞은편 사람들끼리만 오갑니다. 자기들끼리 눈을 맞추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옛날이야기로 낄낄대며 웃더군요. 그 자리에 버젓이 앉아 숨을 쉬고 있는데도,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습니다. 억지로 끼어들자니 대화의 흐름을 깰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초라해져서 그냥 앞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옆자리 동료가 불쑥 묻더군요. "너 어디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화났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서운하고 어색해서 굳어 있던 것뿐인데, 겉보기에는 그저 '기분 나쁘다고 뾰루퉁하게 입 닫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주목받기는 싫다면서, 왜 투명인간은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런 모임에 다녀온 날이면 밤마다 이불 속에서 혼자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는 놈이, 고작 대화에 안 끼워줬다고 속 좁게 삐치기나 하고... 난 왜 이렇게 성격이 모순적이고 옹졸할까?' 답답한 마음에 심리학 책도 뒤적거리고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원했던 건 '주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과, 내가 속한 무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저는 마이크를 잡고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으로서 가끔 눈을 맞추고, 이야기에 물 흐르듯 섞일 수 있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

아이 앞에서 불쑥 터져 나온 거친 분노, 자책보다 먼저 해야 할 일

아이와 나란히 앉아 반려견 훈련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 보호자가 반려견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모습을 보는데, 처음에는 그냥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러니까 개가 저 모양이지", "참 멍청하고 한심하다"며 거친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화면을 향해 삿대질하듯 화를 내던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곁에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숨을 죽인 채 얼어붙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아이에게 직접 화를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제가 거칠고 공격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냈을까?'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걸까?' 그날 이후 이 일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제가 성격이 급해서 그런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이상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누군가가 생명을 함부로 다루거나, 해야 할 책임을 외면하는 모습을 볼 때 유독 화가 크게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해서 조금 더 생각해봤습니다. 타인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고 크게 화가 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누군가가 무너뜨렸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평소 쌓여 있던 피로와 긴장이 그 순간 함께 올라왔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라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나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책임과 돌봄의 기준을 다른 사람이 너무 쉽게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부당하다는 감정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