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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일 못한다고 무시하던 신입이, 단 한 주 자리를 비우자 벌어진 일

직전 직장에서 1년 넘게 함께 일했던 신입사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첫인상부터 굼뜨고 어수선하더니 실제로 업무에 들어가자마자 온갖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일의 속도가 남들보다 서너 배는 느렸고, 선임들이 몇 번이고 가르쳐주어도 도무지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알려준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작업을 하다가 대형 불량을 내거나, 수습하기 힘든 사고를 연달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팀원들의 시선은 빠르게 차가워졌습니다. "저 친구는 수습 끝나면 어떻게 내보내야 하냐", "기본적인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 같다"며 대놓고 혀를 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 내에서는 거의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하자 있는 인간'으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 친구를 마음 놓고 비웃거나 험담에 쉽게 말을 보탤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 직장에서 겪었던 아주 부끄러운 기억 하나가 가슴 한구석에 생생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저도 느린 사람을 비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다니던 직장에도 유난히 손이 느리고 답답하던 동료가 한 명 있었습니다. 혈기 왕성하던 저는 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그를 답답하다고 수군거렸고, 은근히 무시하는 자리에 슬쩍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작업 도중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앞이 캄캄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평소에 제가 가장 답답하다고 손가락질했던 바로 그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묵묵하게 제 사고를 완벽히 수습해 주었습니다.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은 채 말입니다.

그날 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깊은 수치심과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사람의 깊이와 진가를 얼마나 오만하게 재단하고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배웠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새로 들어온 그 느림보 신입사원을 보면서도, 저는 남들처럼 쉽게 손가락질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핀잔을 들으며 서 있는 그 친구의 굽은 등 뒤로 묘하게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선임들이 던져버린 궂은일을 소처럼 받아내다

저희가 하던 일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만 점잖게 앉아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실로 쉴 새 없이 걸려 오는 거래처 전화 응대, 불쑥불쑥 매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까다로운 손님들 맞이, 거기에 출고 시간에 맞춰 완성된 작업물을 일일이 박스에 넣고 테이핑해 송장을 붙이는 고된 포장 작업까지... 손과 발이 잠시도 쉴 틈 없이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조직 사회의 바닥에는 참 잔인한 생리가 있더군요. 누군가 싫은 소리를 못 하고 순하게 굴면, 얄팍한 사람들은 그 사람을 존중하기는커녕 자신의 편의를 위해 철저히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일의 흐름을 뚝뚝 끊어놓는 지긋지긋한 전화벨, 감정을 갉아먹는 매장 손님 응대, 허리가 끊어질 듯 땀을 뻘뻘 흘려야 하는 포장과 출고 준비 같은 일들은 선임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잡무였습니다. 선임들은 "신입이니까 이런 것부터 몸으로 배워야지"라며 자기들이 하기 싫은 번거로운 일들을 몽땅 그 친구의 책상 위로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무리 핀잔을 듣고 궂은일이 몰려와도 얼굴 한번 붉히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전화가 울리면 수화기를 낚아채 응대하고, 매장 문이 딸랑 열리면 뛰어나가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이 나가면 다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산더미 같은 박스를 테이핑했습니다.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그 많은 짐들을 군소리 하나 없이 소처럼 혼자서 묵묵히 다 받아낸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와 손님 때문에 일의 맥이 끊기니, 그 친구의 작업 속도가 남들보다 더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들 속으로 그 친구를 '시키는 대로 다 하는 만만한 호구' 취급하며 비웃었지만, 저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서늘한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저 친구, 다들 비웃는 사이에 자기 방식으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해지고 있구나. 남들이 버린 쓰레기 같은 일들을 다 끌어안으면서, 이 팀 전체의 보이지 않는 실핏줄을 혼자서 통째로 장악해가고 있구나.'

그 친구가 단 한 주 자리를 비운 날, 벌어진 아비규환

그리고 제가 회사를 그만두기 얼마 전, 마침내 그동안 쌓여온 진실이 거대한 폭탄처럼 사무실을 덮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가 출근 중 발목을 다쳐 일주일간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처음엔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틀째가 지나고 사흘째에 접어들자, 사무실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전화벨이 불난 것처럼 끊임없이 울려댔지만, 평소에 전화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선임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수화기 들기를 꺼렸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거래처의 독촉에 진땀을 빼는 사이, 매장 문이 딸랑거리며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왔습니다. "저기요, 주문한 작업물 언제 나와요?", "인쇄물 찾으러 왔는데요~"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컴퓨터 앞의 본업은 손도 대지 못한 채 발이 꽁꽁 묶여버렸습니다.

진짜 참극은 매일 오후 출고 시간이 다가왔을 때 터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오후가 되었을 때 마법처럼 단정하게 박스 포장되어 송장까지 깔끔하게 붙은 채 출고 대기장에 정렬되어 있던 작업물들이,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해 매장 바닥과 작업대 위에 산더미처럼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오늘 나갈 택배 포장 아직 하나도 안 됐어!", "택배 박스 더 큰 거 없어?", "송장 재고 여유분 있어?"

평소에 그 친구를 '일 못하는 굼벵이'라며 손가락질하던 고참 선임들이 사색이 되어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벨은 귓전을 때리고, 손님들은 카운터 앞에서 짜증을 내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박스를 접고 완충재를 쑤셔 넣느라 다른 일은 신경도 못쓸지경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팀원 전원이 달라붙어 허덕이며 겨우겨우 일을 마치곤 했습니다.

선임들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충격과 수치심이 역력했습니다. 그제야 다들 뒤통수를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표정으로 멍하니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보라고 손가락질하며 멸시하던 그 신입이, 매일 빗발치는 전화와 손님 응대, 그 고된 포장 작업의 방파제 역할을 혼자서 묵묵히 다 막아내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친구가 돌아온 날,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일주일 뒤, 병가를 마치고 출근한 그 친구는 여느 때처럼 순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놀라운 것은 그날 이후 사무실의 공기였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그 친구에게 예전처럼 함부로 핀잔을 주거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손이 느리다고 비웃던 사람들은 그 친구 앞을 지나갈 때 슬그머니 눈치를 보았고, 업무를 부탁할 때도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의 실력이 일주일 사이에 기적처럼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서툴렀고 작업 속도도 남들보다 빠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일 못하는 하자 인간'이라는 한마디로 함부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군소리 없이 묵묵하게 버텨낸 그 우직함이, 마침내 그 조직에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거대한 존재감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그가 사라진 빈자리에서 증명됩니다

돌이켜보면 이번 일에서 가장 부끄러웠고 또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그 신입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예전에 느린 사람을 비난했다가 정작 제가 사고를 쳤을 때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수습했던 그 부끄러운 기억이, 이번에도 똑같이 겹쳐 보였으니까요.

세상에는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고, 성과를 요란하게 포장하며, 윗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영악하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사람들이 회사를 다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대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조직을 실제로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진짜 기둥은, 남들이 귀찮다고 던져버린 전화와 손님과 궂은일들을 묵묵히 받아내며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우직한 사람들입니다. 매일 공기처럼 그 자리에 머물 때는 아무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요령이 없다며 무시하고 만만하게 대하기 일쑤지요.

혹시 지금 일터에서 남들보다 손이 느리다고 혼자 자책하고 계신가요? 남들처럼 영악하게 요령을 피우거나 거절할 줄 몰라, 남들이 던져놓은 온갖 궂은일까지 떠안은 채 '내가 바보같이 살고 있나' 깊은 회의감이 드시나요?

절대로 조급해하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란하게 떠들며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소처럼 묵묵하게 땀 흘리며 버텨온 당신의 그 시간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묵묵히 채워온 그 수많은 시간들이, 지금 당신을 그 누구도 함부로 대신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거인으로 키워내고 있으니까요.

사람의 진짜 모습과 가치는 화려한 입담이 아니라, 의외로 그 사람이 잠시 숨을 고르며 자리를 비운 그 쓸쓸한 빈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고 무겁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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