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온 가족이 모여 장인어른의 생신 식사를 대접해 드렸습니다. 사위와 딸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고, 오랜만에 모여 웃으며 식사를 마쳤기에 다들 기분 좋게 한 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신 당일 낮 11시경, 아내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화면을 확인하고 반갑게 전화를 받은 아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장인어른의 목소리에는 서운함과 역정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오늘이 아빠 진짜 생일인데, 어떻게 아침에 축하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이 없냐? 너무한 거 아니냐!"
생일날 걸려온 서운함의 독촉 전화
아내는 멍하니 전화를 받다가 이내 울컥하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낮에는 서로 일하느라 바쁘니 퇴근하고 저녁에 차분히 안부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주말에 모여 선물과 함께 식사 대접까지 다 해드렸는데, 당일 낮에 연락이 없었다고 빚 독촉하듯 닦달을 하시니 순간 야속함이 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아내는 속상함에 씩씩거리며 끝내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저도 같이 맞장구를 치며 서운함을 토로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은 화를 내는 아내의 곁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등을 쓸어내려 주었습니다.
"생신이라 집이 더 적적하셨나 보네. 당신 바쁜 거 아시면서도 그냥 자식 목소리가 듣고 싶으셨겠지. 너무 속상해하지 마."
아내를 다독이면서도 제 마음 한구석 역시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가 왜 이토록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지, 그 눈물 뒤에 깔린 빈자리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온기였던 어머니의 빈자리
장인어른은 젊은 시절 거친 풍파를 겪으며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하지만 그 거친 세월 속에서 가족들 사이의 모난 구석을 보듬고, 자식들과 남편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주던 중심은 언제나 온화하셨던 장모님이었습니다. 몇 해 전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 집안의 그 다정했던 온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아내에게 장모님은 단순한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삶의 거친 파도를 함께 헤쳐온 둘도 없는 인생의 동료였습니다. 어머니라는 든든한 가교가 사라진 지금, 혼자 남겨진 장인어른은 자식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십니다.
생일날 아침, 적막한 집에서 울리지 않는 전화를 바라보며 장인어른이 느꼈을 감정은 어쩌면 권위의식이 아니라 **'세상에서 내가 점점 잊혀가고 있다는 노년의 쓸쓸함과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정하게 "보고 싶다", "적적하다"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옛날 아버지의 서툰 외로움이, 그만 거친 호통이라는 투박한 껍질을 쓰고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 서투름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자식들의 형편보다 자신의 서운함을 앞세우는 아버지의 모습 앞에서 아내는 그리운 어머니의 빈자리를 더 뼈아프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존경은 강요가 아닌 베푼 사랑에서 우러나온다
방 안에 찾아온 조용한 적막 속에서, 아내와 제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얼굴은 역시나 장모님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늘 먼저 베풀고 품어주시던 분. 만약 장모님이 살아계셨다면 분명 특유의 환한 미소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희 일하느라 바쁠 텐데 주말에 밥 사준 것만으로도 넘치게 고맙다. 애쓰지 말고 너희 몸이나 잘 챙겨라."
그 따뜻하고 속 깊었던 목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더 간절하게 그리웠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서운함을 앞세우고 "왜 나를 대접하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어른의 뒤에는, 진심 어린 존경 대신 쓸쓸한 피로감만이 남게 됩니다.
존경과 사랑은 결코 강요한다고 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전에 대접받으려 생색 한 번 내지 않으셨지만, 떠나신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의 가슴속에 눈물겨운 그리움과 진짜 존경으로 살아계신 장모님처럼 말입니다.
화가 가라앉은 아내의 손을 꼭 쥐어주며, 늙어가는 장인어른의 쓸쓸한 뒷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미움보다는 안쓰러움이, 원망보다는 늙어가는 부모를 향한 서글픈 연민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나 역시 언젠가 나이를 먹고 노년의 문턱에 설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식들에게 관심과 대접을 구걸하는 초라한 부모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살아온 날들의 염치와 베푼 사랑으로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진짜 어른이 될 것인가. 장인어른의 서툰 생신 날, 우리 부부는 부모라는 무거운 이름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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