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MBTI를 검사하면 늘 극단적인 'I'가 나오는 사람입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건 질색이고, 어디서 주목이라도 받으면 손발이 먼저 오그라듭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은근히 소외되는 느낌을 받으면 속에서 스멀스멀 기분이 나빠지곤 했습니다.
분명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데, 대화는 제 양옆과 맞은편 사람들끼리만 오갑니다. 자기들끼리 눈을 맞추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옛날이야기로 낄낄대며 웃더군요. 그 자리에 버젓이 앉아 숨을 쉬고 있는데도,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습니다.
억지로 끼어들자니 대화의 흐름을 깰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초라해져서 그냥 앞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옆자리 동료가 불쑥 묻더군요.
"너 어디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화났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서운하고 어색해서 굳어 있던 것뿐인데, 겉보기에는 그저 '기분 나쁘다고 뾰루퉁하게 입 닫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주목받기는 싫다면서, 왜 투명인간은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런 모임에 다녀온 날이면 밤마다 이불 속에서 혼자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는 놈이, 고작 대화에 안 끼워줬다고 속 좁게 삐치기나 하고... 난 왜 이렇게 성격이 모순적이고 옹졸할까?'
답답한 마음에 심리학 책도 뒤적거리고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원했던 건 '주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과, 내가 속한 무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함께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저는 마이크를 잡고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으로서 가끔 눈을 맞추고, 이야기에 물 흐르듯 섞일 수 있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수용되고 있다는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서운함을 느꼈고 표정이 굳었다고 해서, 제 성격이 유난스럽거나 속이 좁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악의가 아니라, 대화의 호흡이 달랐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신나게 떠드는 사람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차분해지고 나서 그 상황을 되짚어보니, 그들이 나를 미워해서 고의로 따돌린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서로 간에 '대화의 호흡'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처럼 말을 꺼내기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을 한 번 정리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틈을 찾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모임에서는 그 틈이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입을 열려고 숨을 들이쉬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이 말을 치고 들어오고, 겨우 할 말을 다듬었을 때는 대화의 주제가 이미 저 멀리 넘어가 있습니다. 몇 번 타이밍을 놓치고 나면 결국 입을 닫고 듣기만 하게 됩니다.
그러면 말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제가 조용히 있으니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거나 혼자 있고 싶어 한다고 지레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소외됐다고 느끼고, 상대방은 내가 편하게 쉬고 있는 줄 아는 어긋남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대화의 템포가 빚어낸 오해였던 셈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바꾼 생각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어색한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마음을 먹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우선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 말을 안 거나?'라는 자기비하부터 내려놓았습니다. 그 자리에 흐르는 대화의 리듬과 제 호흡이 맞지 않았을 뿐, 대화에 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제 존재 가치까지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억지로 대화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안간힘도 내려놓았습니다.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사람들의 입 모양과 표정을 초조하게 쫓다 보면 더 깊은 소외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시선을 테이블 중심에서 살짝 빗겨두어 창밖을 보거나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숨을 고릅니다. 답답할 때는 화장실에 다녀오며 물리적으로 잠깐 환기를 시켜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너 어디 화났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답하는 요령도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억울해서 얼굴이 붉어졌지만, 요즘은 제 상태를 가볍게 인정해 줍니다.
"화난 건 전혀 아니고, 오늘 열심히 들었더니 에너지가 조금 닳았나 봐. 난 편하게 듣고 있을 테니까 계속 얘기해."
굳어버린 표정을 오해로 남겨두지 않고, 내 상태를 담백하게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모임의 공기는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모든 대화의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저는 오랫동안 두 가지를 혼동하며 살아왔습니다. 주목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무시당해도 괜찮다는 마음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무리 속에서 굳이 중심에 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상처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대화에 잘 끼지 못한 날에도 집으로 돌아와 내 표정과 성격을 탓하며 자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모임에서 주인공이 될 필요도 없고, 내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해서 말을 보탤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언제나 대화의 한가운데서 능숙하게 떠드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말없이 한 공간에 머물러도 지나치게 불편하지 않은 거리감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대화에 잠시 끼어들지 못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내 어색한 모습까지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