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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준비하려다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밀

어느 날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교사 언니도 있고, 특성화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교단에 섰지만, 정작 퇴근 무렵 그들을 짓누르는 것은 아이들과의 수업이 아닌 감당하기 힘든 행정 서류와 글쓰기라는 고백이었습니다.

특히 학기 말이 다가오면 수십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와 행동특성,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작성하느라 밤늦도록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습니다. 매뉴얼에 맞는 단어를 고르고, 조건에 맞는 문장으로 정제하느라 정작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어줄 여유조차 빼앗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발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무언가 대단한 시스템을 만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겪는 '매일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현상이 아니라, 진짜 아픔이 머무는 자리를 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단순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써야 할 서류 문장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학기 말의 벼락치기 작성은 관찰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남겨둔 수많은 메모와 관찰 기록을 나이스(NEIS)라는 행정 시스템 규격에 맞춰 정갈한 문장으로 변환해 내는 그 고단한 변환 과정에 있었습니다. 평소에 아이가 칭찬받을 행동을 했을 때, 혹은 따끔한 지도가 필요했던 순간을 한 줄씩만 적어두어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초안 문장으로 엮어줄 수만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선생님들은 학기 말의 두통과 야근 대신, 학기 중에 아이들을 더 따뜻하고 자세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전공자이지만 다행히 요즘은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코드로 옮겨 담을 수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특징과 상황을 넣으면 규격에 맞는 초안을 엮어주는 작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버튼이 눌리고 문장이 만들어지는 순간에는 설명하기 힘든 벅찬 설렘도 찾아왔습니다.

버튼 하나를 두고 갈팡질팡

하지만 진짜 벽은 기술이나 인공지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불쑥 고개를 든 '완벽주의'였습니다.

기능이 얼추 돌아가기 시작하자, 엉뚱하게도 시선이 겉모습으로 향했습니다. 버튼의 위치가 1픽셀 정도 어긋나 보이고, 폰트의 두께와 여백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엉성하고 촌스러운 것 같아 밤을 새워가며 디자인 요소를 뒤적이고, 화면의 모서리 둥글기와 색상 코드를 수십 번씩 고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예쁜 버튼이 아니라 '매일 10분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는 단순한 기능'이었음에도, 나는 완성되지 않은 내 모습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사소한 디테일 뒤로 숨어버린 것입니다.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포장하고 있었지만, 솔직한 실체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작은 시도가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사거나 시시해 보일까 봐, 세상에 내보내지도 못한 채 내 손안에서 만지작거리며 멈춰 서 있었던 셈입니다.

완벽함보다 값진 것은 '미완성의 다정함'

우리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할 때 종종 비슷한 함정에 빠집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 책상 정리와 필기구 배치에 며칠을 소모하고, 글을 쓸 때 첫 문장의 매끄러움에 갇혀 한 문단도 채우지 못하며,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작한 작은 손길조차 거창한 틀을 갖추려다 지쳐 포기하곤 합니다.

완벽을 기한다는 명분 뒤에는 사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나약함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유용한 도구도, 어떤 따뜻한 위로도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형태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서리가 삐뚤빼뚤하고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지금 누군가의 무거운 어깨를 덜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화면 속 완벽한 디자인을 찾는 일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대신 투박한 화면 그대로, 아내 곁의 선생님들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며 여쭤보려 합니다. "선생님, 이런 작은 기능이라도 있으면 오늘 퇴근이 10분은 빨라질 수 있을까요?" 하고 말입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한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대를 향한 진짜 다정함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도 사소한 버튼 하나의 위치 앞에서 망설이며 멈춰 서 있지는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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