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란히 앉아 반려견 훈련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 보호자가 반려견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모습을 보는데, 처음에는 그냥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러니까 개가 저 모양이지", "참 멍청하고 한심하다"며 거친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화면을 향해 삿대질하듯 화를 내던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곁에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숨을 죽인 채 얼어붙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아이에게 직접 화를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제가 거칠고 공격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냈을까?'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걸까?'
그날 이후 이 일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제가 성격이 급해서 그런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이상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누군가가 생명을 함부로 다루거나, 해야 할 책임을 외면하는 모습을 볼 때 유독 화가 크게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해서 조금 더 생각해봤습니다.
타인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고 크게 화가 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누군가가 무너뜨렸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평소 쌓여 있던 피로와 긴장이 그 순간 함께 올라왔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라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나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책임과 돌봄의 기준을 다른 사람이 너무 쉽게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부당하다는 감정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걸까?' 같은 불안이나 부담이 평소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이유 중 하나를 골라 '그래서 내가 화를 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그날의 상황이나 피로,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해서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저에게 중요했던 건 정확한 원인을 하나 찾아내는 것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유난히 크게 올라오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었습니다.
자책에 머무르기보다 먼저 돌아볼 것
이미 쏟아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직접 화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 앞에서 큰 목소리와 거친 말을 쏟아낸 건 분명 제가 돌아봐야 할 행동이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정확히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제가 대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갑작스러운 큰 목소리와 거친 말이 아이에게 낯설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책만 계속하기보다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사과
상황이 가라앉은 뒤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까 아빠가 TV를 보면서 너무 화를 내고 거친 말을 많이 했지? TV 속 사람의 행동이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서 화가 났던 건데, 그렇다고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방식으로 표현한 건 잘못했어."
그리고 아이를 향한 감정이 아니었다는 것도 분명하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너한테 화가 난 게 아니었어. 그런데 아빠가 큰 목소리로 거칠게 말해서 네가 놀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해."
마지막으로 다음에는 어떻게 해볼 것인지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빠도 화가 날 수는 있지만, 화가 난다고 거칠게 말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다음에는 감정이 올라오면 잠깐 멈추고 진정한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연습해볼게."
이렇게 사과한다고 해서 그날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아이와 다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관계를 회복해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불쑥 솟구치는 분노 앞에서 잠깐 멈추는 연습
앞으로 비슷한 상황을 줄이고 싶다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유독 크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당함이나 무책임함을 볼 때마다 감정이 크게 올라온다면, 그 상황이 나에게 강한 분노를 일으키는 지점인지 알아차려보는 것입니다.
이유를 당장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반복되는 상황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다음 반응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화가 턱밑까지 차오른 순간에는 바로 말을 이어가기보다 잠시 반응을 늦춰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TV 화면에서 눈을 떼거나, 잠시 자리를 옮기거나, 물을 마시면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짧은 틈을 만드는 겁니다.
그 짧은 틈이 감정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화가 난 순간에 바로 욕설이나 공격적인 말을 내뱉는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할 여지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화를 아예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화가 나는 감정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올라왔을 때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한 번 더 선택할 여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돌아보는 일
아이 앞에서 감정을 거칠게 표현한 일을 후회하고 있다면, 그 순간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돌아보고, 아이가 놀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음에는 감정이 올라왔을 때 잠시 멈춰보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과정이 언제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실수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다시 선택하는 과정도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저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완벽하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화가 나는 순간을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 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적어도 한 번은 멈춰보고 싶습니다.
이미 잘못한 일이 있다면 너무 오래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그때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습니다.
"아빠가 아까 잘못했어. 미안해."
어쩌면 자책보다 먼저 필요한 건, 그 한마디를 건네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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