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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가장이 대책 없이 퇴사하고 맞이한 아침, 나는 정말 무책임했을까

지난달 초, 7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4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 일을 50대까지, 정년까지 계속할 자신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확실하게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만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내와 아이가 있고, 당장 들어오던 고정적인 수입도 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밤이 되면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

'내가 너무 무책임했던 걸까?'

그것은 정말 '무책임'이었을까

퇴사를 결정할 때는 지금처럼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일을 계속 붙들고 있다가는 언젠가 정말 버티기 힘들어질 것 같다는 직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만두기 전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는 했습니다. 혹시 몰라 정부 지원 교육을 통해 지게차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퇴사한 뒤에는 곧바로 단기 물류·창고 일을 구했습니다. 박스를 나르고 지게차를 몰며 하루하루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일도 내일이면 끝이 납니다.

막상 일이 끝나는 날이 다가오니 마음이 묘해집니다. 내일까지만 출근하면, 모레 아침에는 오랜만에 출근하지 않는 낯선 아침을 맞게 됩니다. 평소라면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을 시간에 나는 집에 멍하니 앉아 있겠지요.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 기간도 벌써 두 달 가까이 되어갑니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자꾸만 '무책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했습니다. 만약 내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것을 내던진 무책임한 사람이었다면, 퇴사 전에 지게차 자격증을 따고 퇴사 직후 물류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었을까요. 물론 이것만으로 대단히 책임감 있는 선택을 했다고 자화자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내가 삶을 함부로 내팽개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두려웠고, 그래서 나름대로 부단히 발을 굴렀던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을까

처음에는 그저 '앞날이 막막하고 두렵다'고만 뭉뚱그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니, 두려움의 실체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당장 통장에 찍히는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불안, 다음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40대에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에게 짐을 지웠다는 무거운 미안함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가장 밑바닥에는 하나의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모든 걱정을 한 덩어리로 뭉쳐놓고 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타래를 하나씩 풀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수입이 끊긴 것은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다음 직장을 찾는 것은 차근차근 부딪혀야 할 과제였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애정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자책은, 아직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은 일에 내가 먼저 내려버린 성급한 유죄 판결이었습니다.

이렇게 걱정의 층위를 나누어 바라보니 시야가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는 선명해졌습니다.

다음 계획이 없다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

퇴사할 당시 확정된 다음 행선지가 없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대책 없이 뛰쳐나온 것 아니냐"는 안팎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계획이 없다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닙니다. 나는 확실한 정답지를 쥐고 출발한 사람이 아니라, 길 위에서 답을 찾아 나가기로 결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게차를 배웠고, 현장에서 땀을 흘렸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선택을 영웅적인 결단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 어떤 결과도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외로운 터널을 지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나는 옳았다'는 억지 확신이 아니라, '그때의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스스로 온전히 이해해 주는 일입니다.

모레 아침이 오면, 일단 일어나려고 합니다

내일이면 단기 일이 끝나고, 모레 아침이 옵니다. 솔직히 무섭습니다. 아무런 목적지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 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두려움을 억지로 떨쳐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찾아오는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합니다. 지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바꿀 수 없는 지나간 과거는 무엇인지 구분해보는 것입니다.

내가 내린 선택이 훗날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100% 정답을 확신할 때만 발을 내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다리가 떨리는 순간에도, 지금의 자리에 머무는 것보다는 나은 쪽을 향해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옮기기도 합니다.

과거의 나를 무책임한 패배자라고 몰아세우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지나간 선택에 끊임없이 판결문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만들어낸 오늘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일입니다.

모레 아침이 오면, 일단 평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신발 끈을 묶으려 합니다. 비록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아침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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